연보에 의하면, 본서(本書)는 저자(著者) 권문해(權文海)선생이 대구부사(大邱府使)로 재직시(在職時)인 선조(宣祖) 22년(1589년, 기축년)에 20권 20책의 편찬을 완료(完了)하여, 상 ·중 ·하(上中下) 삼본(三本)을 정사(淨寫) 하였다고 한다.
상본(上本)은 저자(著者)가 작고(作故)하던 해인 선조(宣祖) 24년 (1591년) 부제학(副提學) 김성일(金誠一)이 가지고 상경(上京)하여 선조(宣祖)에게 진어(進御)하고 간행(刊行)하려 하였으나, 임란(壬亂)의 발발(勃發)로 간행하기도 전에 고본(稿本)마저 잃어버렸으며, 중본(中本)은 정구(鄭逑)가 빌려가서 역시 화재로 소실되었고, 오직 하본(下本)만 본가(本家)에 남아 있었다. 이 후 선생의 아들 권별(權鼈)이 정산서원(鼎山書院) 원장(院長)으로 있을 때 일본(一本)을 등사(謄寫)하여 서원(書院)에 소장해 두었다.
2백여년 후 정조(正祖)22년(1798년)에 저자의 7세손 권진락(權進洛)에 의하여 처음으로 각판(刻板)이 시도되었고, 순조(純祖)12년(1812년)에 8세순 권현상(權顯相)이 비로소 각판(刻板)에 착수하여 24년만인 헌종(憲宗)2년(1836년)에 완료하였다. 이때 완료한 책판(冊板)이 그의 종가(宗家)에 소장되어 왔는데, 1982년 1월 17일 책판(冊板) 677판(板) 중 122판(板)을 도난 당하였다가 종손(宗孫)의 노력으로 4월 13일 완전복구(完全復舊)하여 현재 종가(宗家)의 경내(境內) 서고(書庫)에 보관되고 있다.
본서(本書)는 송(宋)나라 음시부(陰時夫, 본명은 유우(幼遇)이며 시부(時夫)는 자(字)임)의《운부군옥(韻府群玉)》의 체제를 본따서, 우리나라의 역사(歷史) ·지리(地理) ·문학(文學) ·철학(哲學) ·예술(藝術) ·풍속(風俗) ·인물(人物) ·초목(草木) ·금수(禽獸) 등의 분야(分野)에서 고래(古來)로부터 조선(朝鮮) 명종조(明宗朝)에 이르는 제사항(諸事項)을 한자(漢字)의 107운(韻)으로 분류하여 편찬(編纂)한 20권(卷) 20책의 거질유서(巨帙類書)이다.
본서(本書)의 편찬(編纂)에 있어서는 중국서적(中國書籍) 15종, 한국서적(韓國書籍) 174종을 섭렵(涉獵)하였는데, 그 중에는 오늘에 전하지 않는 도서(圖書)의 일문(逸文)도 적지 않게 수록되어 있다.
개인(個人)의 저자(著者)로는 양적(量的)으로나 질적(質的)으로나 매우 우수한 것으로 임란(壬亂) 이전의 사실(史實) ·인물(人物) ·지리(地理) ·예술(藝術) 등 전반에 걸쳐 살필 수 있는 귀중(貴重)한 자료(資料)이다.
그 책판(冊板)이 순조(純祖)∼헌종(憲宗) 때 이루어지기는 하였으나, 임란(壬亂) 이전 개인(個人)이 엮은 유서(類書)로서는 양적(量的) 또는 질적(質的)인 면에서 가장 우수한 완질(完帙)의 대작(大作)이며 그 보존상태도 양호다.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의 저자(著者) 권문해(權文海) 선생의 종가(宗家)에는《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의 초고본(草稿本)이 전래(傳來)하고 있는데, 체재(體裁) ·형식(形式) 등이 다소 상이(相異)한 미완질(未完帙)의 3종(種) 27책(冊)이다. 산질(散帙)된 경위에 대해서는 미상(未詳)이며 그 상태(狀態)와 특징(特徵)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신편대동운옥(新編大東韻玉)(권수제(卷首題))는 별두(鼈頭)에 누락(漏落)된 부분의 기사를 반초(半草)로 보기(補記)한 곳이 여러 군데이며, 표제이면(表題裏面)에는 본서(本書)의 체재(體裁) 등을 8항(項)으로 나누어 적고 있는데, 예컨데“운명백자(韻名白字) 대이묵서(代以墨書)”라 하여, 이 책의 편성체재에 대해 구체적으로 적고 있다. 특히 운자(韻字)는 기인쇄(旣印刷)된 묵서(墨書)에 약물로 두드러지게 나타내고 있다.
이 책은 언제 누구의 손에 의해 등사(謄寫)되었는지 확실(確實)하지는 않으나, 김응조(金應祖)의 발(跋)에 의하면, 저자(著者)의 아들 권별(權鼈)이 정산서원원장(鼎山書院院長)으로 있을 때 경내(境內)의 선서자(善書者)를 시켜 필사(筆寫)하여 정산서원(鼎山書院)에 간직하였던 그 책이 아닌가 여겨진다.
3종(種)의 각각 체재(體裁) ·형식(形式) · 서체(書體)등이 약간씩 다르다. 그리고 3종(種) 공(共)히 권수서명(卷首書名)이《신편대동운옥(新編大東韻玉)》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인용서목(引用書目), 체재(體裁)등이 간본(刊本)《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의 것과 다소 상이(相異)한 부분이 발견(發見)된다.
이 초고본(草稿本) 등이 비록 결책(缺冊)이 있는 미완질(未完帙)이기는 하나, 전존(傳存)《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을 편간(編刊)하는데 바탕이 된 자료(資料)인 점에서 가치가 있다고 사료(史料)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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