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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거지 소개

 

 

 

예천은 경상북도 북서부에 위치한다. 원래 신라의 수주현인데,경덕왕 때 예천군으로,고려에 와서 숙주로, 명종때에는 기양 (혹은 양양)이라 명명되었다.조선 태종 때에는 보주군이라 칭하다가 예천으로 변경되었고,1914년 용궁군과 풍기군의 일부를 합하여 현재에 이르렀다.주요 성씨로 권, 임, 박, 윤, 정씨 등이 있다.

 

일찍이 정감록에 의하면 예천권씨 세거지인 예천군 용문면은 '십승지' 중의 한곳이라고 하였다. 십승지란 '전쟁이나 천재(天災)가 일어나도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열군데의 땅을 의미하는데, 원래 승지(勝地)란 경치가 좋은 곳 또는 지형이 뛰어난 곳을 지칭한다.  특히 우리 나라에서는 흔히 굶주림과 전쟁을 면할 수 있는 피난처'를 의미한다고 했다.

 

예천군을 살펴보면 이곳은 소백산 줄기가 북쪽을 막고 낙동강이 남쪽을 경계하는 천연의 요새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 낙동강 주변의 구릉을 따라 점촌에서 안동을 잇는 4차선의 34번 국도가 예천군을 동서로 횡단하고 영주와 군위를 잇는 28번 국도가 남북으로 관통하게 됐다. 여기에다 중앙고속도로, 중부내륙고속도로가 연이어 개통되면서 군청 소재지인 예천은 교통의 요지로 바뀌었고, 경북 도청이 이전하기로 하면서 더욱 세가 불어나고 있다.

"임진왜란때 이여송장군이 이곳 지세를 보고 큰 인물이 난다고 하여 오미봉에 쇠말뚝을 박았다고 한다. 그 이후 큰 인물이 별로 안난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판.검사는 다른 면에 비해 많이 배출한다" 고 촌로(村老)들이 증언하며 이곳 금당과 이웃한 맛질 (능천, 제곡, 대제, 하학리) 이란 동네를 합하면 서울의 반은 된다는 것이 이 지방에 전해오는 말. 다만 서울과 비교해 부족한 것이 한강 같은 큰 물이 가까이 없다는 점이다.

용문은 쌀이 남아 돈다. 또 '예천마늘' 의 주산지다. 이처럼 '가난' 을 모르는데다 인물까지 배출하는 곳이다. 뜻있는 사람은 후손을 위해 아직도 둥지를 틀 만한 곳이다.



하금곡리 (버들밭)

 

조선 세종조때 4세 권유손(權幼孫)이 버들밭 오룡곡(五龍谷)에 정착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 보통 금당실로 통칭 되었으나 그 아랫쪽이 되므로 아랫금당실 혹은 하금곡동이라 하였다. 버들밭이라는 지명으로 미루어볼 때, 이미 오래전부터 세거지 앞쪽에 위치한 시냇가에 버드나무 숲이 존재 하였으리라 판단되며, 병암정과 더불어 수려한 자연경관을 자랑하고 있다.

 

예천권씨 최초의 집성촌인 버들밭은 본래 예천군 제곡면 하금곡동 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용문면 하금곡동이라 하였다. 1988년에 하금곡리로 개칭하였다.

 

 


 죽림리 (대수)

 

이곳에 선돌(입석) 3개가 있는 것으로 보아 청동기 시대(BC 7C)에 이미 사람이 살았을 가능성이 있으며, 신라초의 6촌 중 대수촌이 이곳일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고려초에는 금당사라는 큰 사찰이 있었다고 하나, 현재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조선 중엽 '권오상(權五常)'이 마을을 처음 개척하였는데, 마을 뒷쪽에는 대나무 숲이 있고 마을 앞쪽에는 작은 늪이 있었다하여 죽소(竹所) 혹은 대수(행정명:죽림리)라고 하였다.

본래 예천군 제곡면 죽림동이었다가 1913년 자고면 죽림동으로 개칭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용문면 죽림동이라 하였다. 1988년에 죽림리로 개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