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서울에서 문중일을 맡아 애쓰시는 용자규자 되시는 분을 비롯한 경향 각지의 족친들이 일심동체가
되어 우리 문중 소유의 병암정과 영사당공종택을
문화재로 지정 요청하신건에 대하여 같은 족친의 일원으로서 그간의 노고에 대하여 감사와 뜨거운 격려를
보냅니다
충효의 고장 예천을 빛낸 우리 조상님들의 혼이 담긴
병암정과 영사당공 종택에 대하여 우리문중 모든분들이 열과 성을 다하여 동참, 꼭 지정 받을 수 있도록 간절한 바램으로 간단하게 소개를 드립니다
- 병암정 및 별묘
. 잘 아시는 사항이라 생략함
- 영사당공 종택
. 영사당공(의병장. 諱 祐, 1520- 1593)은 졸재공의 아드님으로 세종대왕의 현손녀와 혼인 성품이 호탕 활달하여 대기(大器)라 하였으며 윗대 오형제분을
(오형제 모두 과거급제)본받아 재지(才智)가 뛰어나고 글을 읽으면 대의를 통하였음
공은 1580년경 향리인 아랫 금당실(버들밭)에 아드님과 함께 자택을 신축 임진왜란전의 건물임

영사당공 아랫대는 감역공(8세) 9세 월오당공
10세 용암공, 승지공, 일류당공 세분은 영사당 종택에서 태워나시고 자랐으며 11세 7분중 3분이 형조참의. 호조참판. 대사헌, 4분은 모두 호군 관직을 하셨고
12세 8분도 좌랑. 참판. 조랑. 동지중추부사 등 관직을 지내셨음
위와 같이 선대로부터 대대로 높은 학식과 관직을 이어받아온 영사당공께서 임진란을 당하여 왜적의 병화에서 수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하고 사직을 지키고자 몸을 던져 의병장으로 활약하셨기에 정승보다 더 존경스런 큰 그릇이시며 공께서 마련한 종택은 지금까지
400여년 수많은 후손으로 면면히 이어져 가장 많은 후예를 두어 많은 선비와 국가에 기여한 인재를 배출 하였고 역사적으로 유서깊은 고택으로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사료됨.
(1780년 중수하였으나 오랜세월 풍상으로 퇴락하여 대중수가 시급함)